평소와 다름없는 날, 파우릭은 가장 친한 친구인 콜름을 찾는다. 평소처럼 펍에 가서 맥주나 한잔 하자고 아무리 불러도 대꾸도 않는 콜름이 심상치 않다. 싸운 것은 아니다. 파우릭은 콜름이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이 둘이 싸웠느냐고 묻지만 파우릭의 기억에 그런 적은 없다. 내가 말실수했나? 영문을 알 수 없는 파우릭이 묻자 콜름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이니셰린의 밴시> 기본정보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콜린 패럴, 브랜던 글리슨, 배리 키오건, 케리 콘던, 쉴라 프리톤
개봉: 2023.3
러닝타임: 114분
ott: 디즈니 플러스 / 웨이브
<이니셰린의 밴시> 줄거리, 결말, 해석
이니셰린이란 섬은 영화 속에서 아일랜드의 한 외딴섬으로 실제의 지명이 아닌 감독이 창조해 낸 공간이다. 이니셰린이란 섬의 공간적 특징은 외부와의 단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마을에는 펍도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절교를 선언하고 나서도 파우릭과 콜름은 매일같이 펍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이니셰린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섬에 산다는 것 자체가 지루함, 심심함을 뜻한다.
파우릭은 가축들을 키우며 우유를 짜서 팔아 생계를 이어간다. 남는 시간에는 그저 맥주를 마시며 수다나 떨며 보낸다. 지난번에는 콜름에게 당나귀 똥에 관해 몇 시간이고 이야기했다. 파우릭은 이니셰린의 삶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콜름의 생각은 다르다. 작곡을 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콜름은 인생을 좀 더 의미 있는 것에 쓰고 싶다.
노년에 접어든 콜름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당나귀 똥 이야기를 듣는데 허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해 왔을 것이다. 더 이상은 자신의 사색과 작곡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게 파우릭을 자신의 인생에서 잘라 버린 것이다. 한순간에 콜름의 인생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파우릭은 더 자세한 설명과 납득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 자신이 '지루해서' 더는 상대할 수 없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콜름이 파우릭은 '지루한 사람'이라고 명명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콜름과 마찬가지로 파우릭이 실은 '지루하지만 성격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절교 선언에도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파우릭에게 콜름은 경고를 한다. 앞으로 자신을 귀찮게 할 때마다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주겠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한다. 한 줌의 평온만을 원한다는 콜름은 파우릭의 평온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둘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합당한 이유 없이 한 인간에게 절교 선언을 당한 파우릭은 억울하고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콜름은 파우릭에게 받아들일 시간 따위는 허락하지 않고 바로 전면전에 돌입해 버렸다. 영화의 배경은 1923년 4월이다. 아일랜드 내전의 종전을 한 달 앞둔 시기다. 이니셰린 섬 너머에서는 전쟁의 포화 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1년을 끈 이 실제 내전은 점점 왜 싸우는지 이유가 흐릿해져 간다. 마치 파우릭과 콜름의 관계처럼.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아일랜드 내전에 관한 은유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하지만 영화는 아일랜드의 역사를 빼고서도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영화는 마치 콜름처럼 관객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보는 우리도 콜름이 왜 그러는지 알려고 머리를 한참 굴리고 해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여지가 많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파우릭의 입장에 설 것이고 누군가는 콜름의 입장에 설 것이다.
파우릭에게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선언한 콜름은 진짜로 손가락 하나를 잘라 그의 집 문 앞에 던진다. 콜름은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가이다. 하지만 예술가인 콜름이 이니셰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사색을 하는 것? 콜름은 자신의 인생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 멋진 곡을 작곡해서 모차르트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손가락이 필요한데 단순히 친구가 귀찮게 했다는 이유로 손가락을 자른다는 건 문제는 파우릭이 아니라 콜름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다.
콜름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작곡의 시간을 가진다고 해서 그의 음악이 그가 원하는 만큼 탁월할까. 그가 만든 음악은 자신을 실망시켰을 수도 있다. 더는 작곡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이었을 수도 있다. 작곡을 하지 않으면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연주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콜름은 자신의 나머지 네 손가락도 다 잘라 버린다.
콜름이 절교까지 선언하면서 만든 음악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이니셰린의 밴시'다. 밴시는 아일랜드 전설에 죽음을 알려주는 요정이다. 파우릭과 콜름의 대화에서 예전의 밴시는 죽음을 알려주고 울었지만 요즘은 그저 멀리서 지켜본다는 말을 한다. 영화에서 '밴시'로 상징되는 인물은 맥코믹 부인이다. 맥코믹 부인은 저승사자처럼 검은 드레스를 차려입고 다니고 모두가 회피하는 대상이다. 그녀는 예언을 하나 하는데 이번 달 안으로 두 개의 죽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맥코믹 부인은 주로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과 그녀를 따라다니는 도미닉을 멀리서 계속 지켜본다. 도미닉은 영화의 말미에 호수의 시체로 떠오르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경찰관으로 영화 초반에 다른 사람에게 마을의 소식을 전하면서 호수에 빠져 죽은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말을 하지만 자신의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도미닉의 아버지는 그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성추행하는 인물로 인정사정없는 인간이다. 아들의 죽음으로써 가장 뼈 아픈 결말을 맞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럼 나머지 하나의 죽음은 누구일까. 일단 파우릭이 아끼던 당나귀 제니가 콜름의 손가락이 목에 걸려 죽게 된다. 그럼 제니가 두 개의 죽음 중 하나일까. 제니의 죽음은 두 죽음 중 하나라기보다는 콜름과 파우릭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역할을 위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하나의 죽음은 밴시로 생각되는 맥코믹 부인이 계속 주시하던 한 인물 시오반일지도 모른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인 시오반은 이니셰린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본토의 도서관에 일자리를 얻어 떠나게 된다. 그녀가 떠나갈 때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 또한 맥코믹이다. 편지에서 시오반은 본토에서 전쟁이 거의 끝나간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가 죽음으로써 파우릭이 완전히 홀로 남겨지게 되고 두 개의 죽음이 성립되는 것이라고 해석해 본다.
콜름은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하곤 하는데 주로 파우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의 마음속에 파우릭에 대한 미안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서는 파우릭이라는 존재가 삶에서 없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뿐이다. 파우릭을 끊어내는 방법이 과격하기 그지없지만 세상에 어떤 방식의 이별이 아프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면 콜름의 방법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고해성사를 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콜름이 오랫동안 절망감에 시달려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에 대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절망감은 그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고 관계를 점검하는 계기를 가지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더한 절망감만을 확인한 채 자신의 손으로 예술가의 수단인 손가락을 모두 잘라 버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자신이 자식처럼 아끼던 제니가 콜름 때문에 죽자 파우릭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콜름의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사실상 널 죽이겠다는 경고를 하고 그대로 실행한다. 하지만 악감정도 없는 그의 개까지는 죽일 수 없어 시간을 알려주고 개를 밖에 내놓으라고 한다. 다음날 아침 파우릭은 콜름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콜름은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와 해변가에 서있다. 파우릭이 다가가자 콜름이 먼저 제니의 죽음에 대해서 사과하며 자신의 개를 돌봐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파우릭은 "언제든지"라고 말하며 돌아서서 가고 그 광경을 맥코믹 부인이 지켜보고 있다.
둘은 화해한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맥코믹-밴시의 예언이 있게 되는 걸까. 그것은 각자 판단할 몫이다.
<이니셰린의 밴시>는 자세한 설명이 없는 영화지만 배우들의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하나의 답을 찾기보다는 자기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보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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