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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비바리움> , 줄거리, 결말, 해석, 비바리움의 의미

by 영화로운_ 202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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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비바리움

 

기본정보

감독: 로간 피네건
출연: 이모겐 푸츠, 제시 아이젠버그
개봉: 2020, 7
러닝타임: 97분
OTT: 티빙 / 웨이브 / 쿠팡 플레이 / 왓챠 / 넷플릭스

 

 

영화 줄거리, 결말, 해석

넷플릭스 / 비바리움

연인 사이인 제마와 토은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한 부동산을 찾아간다. 어딘가 어색한 부동산 중개인은 ‘욘더(yoner)’라는 이름의 동네를 소개해 준다. 욘더 마을은 모든 집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같은 문, 같은 색, 같은 크기, 같은 지붕, 그것도 모자라 구름까지 다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모든 게 똑같이 주어진 마을에서 제마와 톰은 9호 집을 소개받게 된다. 

 

이렇게 이상한 동네에서 살고 싶어질 리 만무하다. 제마와 톰은 대충 집을 보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다. 그의 차도 이미 보이지 않는다. 동네를 빠져나가기 위해 제마와 톰도 차를 몰아 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계속해서 9호 집으로 반복적으로 돌아오기만 한다. 해도 지고 차에 연료도 없다. 차가 멈춰 선 곳은 하필 9호 집 앞이다.

영화 <비바리움>에서 비바리움의 뜻은 영문으로는 <vivarium>으로 'place of life (삶을 위한 장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비바리움은 관찰이나 연구 목적을 위해 동물이나 식물을 가두어 사육하는 장소를 의미하는데 영화 속 욘더의 소름 끼치게 같은 모양을 한 집들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누군가에 의한 거대한 실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실험을 할 때 동일 조건을 맞춰두고 그 안에서 각각의 변화를 조사하듯이 욘더는 거대한 비바리움인 것이다.  

 

뻐꾸기는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지 않는다. 다른 새들의 둥지에 어미가 없는 사이 몰래 알을 낳고 날아가 버린다. 종종 먼저 깨어난 뻐꾸기는 둥지의 다른 새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이 둥지를 독차지한다. 어미 새는 안타깝게도 뻐꾸기와 자신의 아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열심히 뻐꾸기를 키우게 된다.

넷플릭스 / 비바리움

 

누구인지는 몰라도 제마와 톰을 가둔 자들도 자신들의 손으로 아이를 키울 마음이 없다. 박스 안에 아이를 넣어 그저 그들에게 보낸다. ‘아이를 키우면 빠져나갈 수 있다.’라고 쓰인 박스에 갓난 아이가 들어있다. 욘더의 9호 집은 언뜻 좋은 집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넓은 안방과 아늑한 거실, 세련된 주방에 마당의 잔디까지 마다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일을 하지 않아도 집 앞으로 생필품이 배달된다. 치약이며 음식까지 모두 깨끗한 포장 상태로 배송된다. 필요한 건 모두 집 안에 있다. 생존에 아무런 문제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아이가 생기면서 혹은 배송됨으로써 외관적으로 가족의 형태까지 갖추게 된다. 이렇게 제마와 톰의 비바리움 생활이 계속된다.

넷플릭스 / 비바리움

 

아이는 기괴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다. 아이는 제마와 톰에게 가장 많은 문제를 안겨다 주는 ‘외부 요소'다. 아이는 그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데 그 모습이 해괴하다. 배가 고프면 무턱대고 밥이 나올 때까지 비명을 지른다. 뻔뻔하게 제마에게 엄마라고 부른다. <비바리움>의 제마도 아이를 보면서 내적 갈등을 겪는데 해괴망측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이 아이라는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애라는 생각도 안 들고 인간 같지도 않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단지 아이일 뿐인데 너무 심하게 대할 순 없는 것이다. 겉으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마도 보는 우리도 일반적으로 아이에게 갖는 정서와 적대적인 감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톰은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그냥 던져 버린다. 그 순간 꽁초를 던진 자리의 잔디가 순식간에 동그랗게 타면서 흙바닥이 드러난다. 정원사로 일하는 톰은 단번에 흙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땅을 파기 시작한다. 땅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생명 활동의 기반이다. 땅이 이상하다는 것은 지금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욘더의 삶이 아무리 생존에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기반부터 잘못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해 본다.

 

그럼 가장 잘못되어 있는 건 무엇일까. 그냥 바로 자유의 부재이다. 그들에게는 집을 선택할 권리도 이동할 권리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의 권리도 모두 박탈 당한 상태다. 오로지 생존만이 허락된 상태다. 우리는 늘 생존만을 위해 버둥 거린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건 그보다 더 거대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비바리움>에서 제마와 톰이 그리워하는 건 음식의 맛 (그곳의 음식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이나 바람, 모양이 서로 다른 구름, 음악과 춤 같은 것들이다.

 

톰은 갈수록 땅 파기에 집착한다. 제마는 톰에게 여전히 장난도 걸어보고 아이한테 정도 붙이려고 노력해 본다. 땅 파기나 양육은 그들에게 어쩌면 희미하게 남은 삶의 명분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24시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이 도시에서 그들이 살아가야 할 목적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인간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는 어느 날 집을 나와 어딘가 다녀오더니 책을 한 권 가지고 온다. 책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혀있고 어른과 아이의 모습을 한 인간의 도감이 실려 있기도 하다. 누군가 인간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자료처럼 보이지만 제마는 책을 이해할 수 없다. 아이는 어느새 쑥쑥 자라서 어른의 모습이 되고 톰은 땅 파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점점 쇠약 해진다.

톰이 마당에서 죽어 가는데 배은망덕한 아이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제마는 그렇게 빠져나가고 싶었던 9호 집에 제발 들어가게 해달라고 매달리지만 아이는 외면한다. 톰은 결국 집 앞에서 죽게 되고 아이는 어느새 바디백을 가지고 와 톰의 시신을 담아 톰이 파놓은 구덩이에 집어넣는다. 머지않아 제마도 죽음을 맞이하고 둘은 같은 구덩이에 묻히게 된다. 결국 둘은 비바리움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넷플릭스 / 비바리움

 

죽기 전 제마는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난 대체 뭐지?’ 아이는 당신은 엄마라고 말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을 한다고 말해준다. 그다음은 뭐냐는 제마의 질문에 아이는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로 “죽지"라고 말한다. 아이는 제마와 톰을 땅에 묻고 시내의 부동산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처음 제마와 톰에게 집을 소개해 주었던 마틴이 기다리고 있다. 마틴은 이름표를 아이에게 건네주고 숨을 거둔다. 새 마틴은 죽은 마틴을 바디백에 담는다. 욘더에는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또 죽을 것이다. 마틴도 죽고 또 새로운 마틴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한낱 소모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 <비바리움>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견해다. 언뜻 단순한 내용의 SF 영화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아서 즐겁게 본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해석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진출처_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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