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의 홍콩의 한 아파트로 쑤와 차우의 부부가 같은 날 이사를 온다. 마치 앞날의 운명을 예고하듯 두 집의 짐은 계속해서 뒤섞인다.
기본 정보
감독: 왕가위
출연: 장만옥, 양조위
개봉: 2000.10
러닝타임: 99분
OTT: 티빙 / 웨이브 / 쿠팡 플레이 / 왓챠/ 넷플릭스
영화의 줄거리와 후기
국수를 사러 갈 때조차 아름다운 치파오 차림에 완벽한 모습으로 가는 쑤(장만옥)을 두고 그의 남편은 바람을 피운다. 바로 옆집의 차우의 아내와 말이다. 차우(양조위)와 쑤는 쑤의 가방과 아내의 가방이 같다는 것과 남편의 넥타이와 차우의 넥타이가 같다는 걸 보고 둘의 사이를 눈치채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바람피우는 방식은 비슷한가 보다.
둘이 대체 언제 관계가 시작된 걸까? 쑤와 차우는 그것이 궁금해진다. <화양연화> 속에서 쑤의 남편과 차우의 아내는 뒷모습만 나온다. 그들의 모습을 철저하게 배제함으로써 쑤와 차우의 관계를 더욱 극대화한다.
차우의 아내는 싸움 뒤 집에 들어오지 않고 쑤의 남편은 일본 출장을 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둘이 함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도대체 어떻게 두 사람이 불륜에 빠지게 된 건지 궁금한 두 사람은 그들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방어막이 하나 있다. 주문처럼 계속 되뇌는 말,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
영화 <화양연화>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주제곡인 <In the mode for Love>가 영화 내내 수도 없이 반복된다. <화양연화> 속 음악은 만두를 먹는 모습이 이렇게까지 매력적일 일인가 싶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그들의 몸짓이 순간 느릿해지면서 음악이 흐르면 마치 광고의 가장 아름다운 한 장면처럼 변한다. 쑤와 차우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서로 엇갈리고 갈등하고 망설이는 장면마다 음악이 흐른다. 이 영화에서는 음악이 하나의 배역을 맡은 배우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조연이다.
처음에는 바람난 남편과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 거짓 연기를 하는 듯하던 두 사람의 마음에 점점 동요가 생긴다. <화양연화>는 이 모습은 장황한 대사나 적극적인 몸짓 대신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음악과 클로즈업 된 얼굴의 미묘한 표정 변화, 망설이는 몸짓과 급한 발걸음 같은 것으로 표현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두 사람의 감정이 전달된다. 배우의 연기, 완벽한 미장센, 딱 들어맞는 음악, 왕가위 감독의 역량 등 이 모든 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란 생각이 든다. <화양연화>는 미장센을 위한 미장센에 의한 미장센의 영화다.
*(미장센_ 원래는 연극에서 쓰는 용어로 영화에서도 많이 쓰인다.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장치를 의미하는 말로 연출가가 시각적 요소를 조화롭게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쑤와 차우는 점점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선은 지킨다. 왜냐하면, 이건 가짜 관계이고 우린 그들과 다르다는 자기암시에 가까운 주문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둘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걸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면 감출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은 인간이라는 마음은 그들은 지켜주고 있는 걸까, 막아서고 있는 걸까.
쑤가 차우를 만나러 갈 때 살짝 매만지는 입술과 그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기 위해 급하게 뛰어오르는 계단과 바로 문 앞에서 망설이고 마는 마음은 대사가 없어도 사랑임을 알 수 있다. 차우에게도 쑤를 향한 마음이 싹트지만 그는 계속 이 말만을 되풀이한다. 이건 가짜니까요. 가짜니까 아파할 필요도 울 필요도 화낼 필요도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감정은 감추어지지 않는다. 우는 쑤를 달래주는 차우의 눈빛도 흔들린다. 쑤의 손을 잠깐 잡는 차우의 마음과 차우가 잡았던 손으로 자신의 팔을 매만지는 쑤의 마음은 이미 하나이다.
1962년 홍콩, 배우자를 두고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이러면 안 된다는 이성적인 생각과 우리는 그들처럼 될 수 없다는 마음이 그들의 사랑을 자꾸만 붙잡는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그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서로 옆으로 비켜서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계단에서 맞닿을 듯 닿지 않고 또다시 멀어지고 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는 입장에서도 점점 안타까워진다. 벽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쑤와 차우의 모습은 닿을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하게 한다.
쑤는 차우의 작업실에서 밥을 먹다 말고 불쑥 차우에게 여자가 있느냐고 묻는다. 차우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렇다고 말한다. 쑤는 차우를 때리지만 세게 때리지는 못한다. 그런 순간조차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지 내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는 쑤의 마음이 드러난다. 다시 물어보는 쑤에게 차우는 처음엔 여자는 없다고 했다가 또 있다고 말한다. 쑤는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만다.
“이렇게 속상할 줄 몰랐어요.”
이 말은 “당신을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 몰랐어요.”라고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 우는 쑤를 달래주는 차우는 또다시 되뇐다. 이 관계는 가짜니까. 울지 마요. 가짜라고 자꾸 말할수록 진짜가 되어버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들처럼은 절대 안 될거라고 믿었던 두 사람이지만 어느새 둘은 남편과 아내를 이해하게 돼버린다. 서로에게 배우자가 있어도 다른 사람과 어떻게 시작되어 버리는지 그들도 몸소 체험한 것이다. 싱가포르로 가겠다는 차우와 일본에서 돌아온 쑤의 남편. 쑤는 갈등하게 된다. 쑤는 차우를 따라가고 싶지만 둘은 결국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홀로 남겨진 쑤와 복도를 따라 나부끼는 붉은 커튼이 쑤의 마음을 말해준다.
1966년 캄보디아, 차우는 앙코르와트 사원에 간다. 그곳에서 기둥의 구멍 하나를 발견한 차우는 구멍에 자신의 비밀을 속삭이고 구멍을 풀 무더기로 막아 비밀을 영원히 봉인한다. 차우가 가슴 아프게 봉인하고 싶었던 비밀이 쑤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서 보고 또 봐도 결말을 알고 봐도 마음 아픈 영화다.
첫 순간에 스파크가 튀기는 사랑보다 천천히 스며드는 사랑이 더 무섭다. 천천히 스며들어 내 살과 같이 내 피와 같이 변하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랑 말이다. 인생의 화양연화로 기억되는 사랑이 그런 사랑이 아닐까. 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꽃답고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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