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감독: 임대형
개봉: 2019.11
출연: 김희애, 나카무라 유코, 김소혜, 성유빈, 키노 하나
수상내역: 40회 황금촬영상 신인여우상
4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각본상
21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
4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영평 10선
18회 피렌체 한국영화제 비평가상
7회 들꽃영화상 프로듀서상
영화의 줄거리, 윤희와 쥰은 만날 수 있을까.
눈이 가득 쌓인 한겨울의 오타루는 온통 하얀빛으로 가득하다. 마사코는 함께 사는 조카인 쥰의 빨래를 정리하다 우연히 테이블 위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발견한다. 봉투 위에는 “윤희”라는 이름이 쓰여있다. 마사코는 흰 눈이 쌓인 거리를 걸어가 쥰 몰래 봉투를 우체통에 넣고 돌아온다. 한국에 도착한 편지는 윤희의 딸 새봄에게 닿게 되고 새봄은 엄마에게 바로 전해주는 대신 자신이 먼저 편지를 뜯어 읽어 보게 된다. "쥰"이란 사람은 누구인지, 엄마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인지 새봄은 궁금해진다. 쥰은 편지에서 윤희에게 편지를 쓰게 된 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전한다.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
윤희는 구내식당에서 일하며 살아간다. 남편과는 이혼하고 딸인 새봄과 단둘이 살고 있다. 이따금 전남편은 취한 채 윤희의 집을 찾아온다. 윤희는 그런 전남편이 달갑지 않다. 엄마는 무엇 때문에사느냐고 묻는 새봄의 질문에 자식 때문에 산다고 말하는 윤희는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처럼 영화 내내 얼굴에 희미하게 표정이 스치듯 올라왔다 사라지기만을 반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면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말하는 새봄은졸업하기 전여행을 가자고 윤희에게 제안하지만 새봄의 속내는 따로 있는듯하고 어느 날윤희는 우편함에 꽂혀 있는 쥰에게서 온 편지를 발견하고 동요한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의 이혼 후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온 쥰은 한국을 떠나온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류스케가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며 남자를소개해주겠다고 하자 쥰은 화를 내고 차에서 내리고 만다. 쥰은 자신을 향한 편견과 간섭이 싫다. 쥰은 편지에서 윤희를 알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쥰은 자신을 알지만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
윤희는 새봄과 일본여행을 가기로 결심하고 직장의 영양사에서 휴가를 줄 것을 부탁하지만 영양사는 매몰차게 거절한다. 결국 윤희는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일본에 도착 후, 새봄은 윤희에게 오전에게 각자 시간을 보낼 것을 제안한다. 윤희는 섭섭한 마음이 들지만 그렇게 하기로 한다. 새봄은 자신을 따라 함께 일본에 놀러 온 경수와 몰래 만나 쥰의 집과 마사코의 카페를 찾아간다. 새봄은 오작교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윤희는 이른 아침부터 어디론가 나갈 채비를 한다. 거울 앞에 선 윤희의 표정에 긴장이 묻어있다. 택시를 잡아타고 하얀 오타루 속을 달리는 윤희는 무슨 생각에 잠긴다. 드디어 쥰의집 앞에선 윤희는 가만히 집을 응시하고 서 있는다. 이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쥰이 나오려고 하자 윤희는 황급히 건물 뒤로 몸을 숨긴다. 여관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윤희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여관으로 돌아와 함께 온천욕을 즐기던 중 새봄은 윤희에게 아빠를 만나기 전 누구와 연애를 했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윤희는 이렇게 말한다.
“가까이 가면 항상 좋은 냄새가 났어.”
새봄은 홀로 마사코의 카페로 향하고 마사코에게 내일 아침에 쥰을 만나러 오겠다며 쥰에게 전해 달라고 말한다. 다음날 아침마주 앉은두 사람은 어색한 대화를 나눈다. 새봄은 쥰에게 6시에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엄마 윤희에게도 6시에 만나자고 말한다. 이쯤에서 모두 알 것 같은 새봄의 계획, 쥰과 윤희는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난 둘은 어떤 모습일까.
단 한번 피어나는 윤희의 표정
영화 내내 윤희의 표정은 거의 무표정에 가깝다. 화를 내거나 짜증 낼 때도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마치 윤희 안에 있는 인생의 의미가 빛이 바래서희미해질 만큼 희미해진 듯한느낌이다. 여행을 마치고 현상한 필름 사진을 보던 새봄이 엄마는 어떻게 웃고 있는 사진이 하나도 없냐고 나무랄 정도다. 쥰과 헤어지고 난 뒤의 삶을 벌이라고생각했다는윤희가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왔을지를 생각하면 윤희의 무표정한 얼굴에 공감하게 된다. 그런 윤희의 표정이 단 한번 피어나는 때가 있다. 바로 쥰과 다시재회했을 때,윤희는 놀랐다가울 것같았다가 웃었다가 갑자기 지나간 삶의모든 것이밀려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윤희에게 쥰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냄새로기억되는사랑
사람의 후각은 인간이 가진 감각 중 가장 고도로 발달된 감각 중 하나이며 기억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실제로 후각정보가 떨어지면 이성에 대한 관심도도 함께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헤어진 연인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소한 것들은 점점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더라도 자주 쓰던 향수나 비누향, 샴푸향 같은 것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지나가다가 비슷하거나 혹은 똑같은 향을 맡으면 바로 그 시절 사랑했던 사람이 떠오르곤 한다. 쥰은 마사코에게 젊은 시절 연인에 대해 묻는데 마사코는 그 사람을 “화장실 방향제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다.”라고 말한다. 즐겨가던 극장의 화장실에 나던 방향제의 냄새가 항상 날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윤희와 쥰도 서로를 향기로 기억하고 있다.
새봄과 경수 그리고 윤희와 쥰
윤희의 딸 새봄과 경수는 풋풋한 연인 사이다. 운동장 바닥에서 주운 장갑을 리폼해서 서로 한 짝씩 끼고 다니는 모습이 귀엽다. 왜 한 짝만 끼고 있냐는 윤희 질문에 “의미가 있는것”이라서라고새봄은 말한다. 새봄과 경수의 연애는 귀엽고 가볍고 다정하고걱정 없어보인다. 보통의 어린 연인이다. 새봄과 경수의 나이일 때 서로 만나 마음을 나눴을 윤희와 쥰도 그들처럼 귀엽고 가벼울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윤희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쥰을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가족들은 그녀의 사랑을 가리켜 병이라 말하며 억지로 윤희를 정신병원에 다니게 했다. 단지 누군가를 사랑했을 뿐인데 윤희에게 가해진 폭력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자신을 숨겨, 나도 네 꿈을 꿔.
세월이 많이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는 사랑의 형태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죽을 때까지 숨기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쥰과 여전히 쥰에 대한 꿈을 꾸지만 편지를 보내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윤희가 있다. 두 사람은 언제쯤 함께 할 수 있을까.
언제쯤 눈이 그칠까
영화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건 단연 사람의 키보다 높게 눈이 쌓인 설국의 오타루 풍경이다. 그 길을 걸으며 또 눈을 치우며 마사코는 "언제쯤 눈이 그치려나"라는 물음을 계속한다. 그에 쥰은 물어도 소용없는 질문이라는 말을 한다. 변치 않는 것, 오랫동안 늘 그래왔던 것에 대해 질문을 멈추는 일, 그 반대편에서 누군가 계속 질문을 하는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막바지 부분에 윤희와 재회 후 쥰도 마사코를 따라 "눈이 언제 그치려나"하고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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