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를 이렇게 볼 수도 있겠다. 세진은 학교 선생님과 사귀는 사이다. 일단 어른인 교사가 미성년자인 학생과 사귄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세진이 임신을 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세진은 아이를 지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세진의 태도를 보면 아이가 생겼다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아주 유아스러운 말투로 아이를 뗄 것이라며 교사인 남자친구에게 돈을 요구한다. 교사가 돈을 주지 않자 세진은 학교 성교육 시간에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임신 사실을 밝힌다. 교장실로 끌려간 세진 앞에 뜬금없이 중국 음식이 배달되어 한 상 차려지고 교장이라는 사람은 담당 선생님도 세진도 임신 중인데 그 앞에서 담배를 피워댄다. 세진을 임신 시킨 선생은 와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 마디 못하고 벌벌 떨고 서 있다. 교장은 선생을 엎드리게 한 다음에 골프채로 그에게 체벌을 가한다.
처분 대신 체벌이라는 건가? 직장 내 괴롭힘을 보여주려는 건가? 거기에 더해 세진처럼 아이를 가진 선생은 새빨간 글자가 적힌 각서를 내밀며 세진에게 사인하라고 요구한다. 게다가 지금 세진에게는 보호자인 부모가 부재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임신한 세진을 잘못 대응해 준 어른들은 세진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몰라요'가 될 것이다.
<어른들은 몰라요>기본정보
감독: 이환
출연: 이유미, 하니, 신햇빛, 이환
개봉: 2021.4
러닝타임:127분
OTT: 티빙 / 웨이브 / 넷플릭스
<어른들은 몰라요> 영화 줄거리, 결말, 후기
세진은 중절 수술을 받기 위해 일단 14살인 동생만 혼자 두고 집을 나온다. 세진도 딱히 책임감은 없어 보인다. 18살이면 아직 미성년자이긴 하지만 그 정도 상황 판단은 할 줄 아는 나이다. 집에 14살인 동생을 혼자 두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정도는 말이다. 일단 세진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인물 같다.
세진에게는 남자친구인 선생 외에도 동성연애를 하는 여자친구가 있다. 일단 그녀의 성적 취향은 개인의 선택이니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이 여자친구인 은정이라는 인물은 마치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친구들 앞에서는 세진을 심하게 다그치거나 심지어 폭력까지 쓰지만 뒤에서는 미안하다고 세진에게 매달리며 연인 관계를 이어가는 인물로 나온다.
이 인물이 왜 이렇게까지 헷갈리게 행동하는지 설명이 되기도 전에 영화는 갑자기 은정을 컨테이너 박스로 깔아 죽인다. 앞뒤 관계없이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컨테이너에 부딪혔고 위에 있던 컨테이너가 그녀를 깔아뭉개 죽인다. 굳이 '어른들은 모른다'를 말하기 위해 18세인 은정을 컨테이너에 깔아 죽이는 장면은 그저 잔혹한 장면을 위한 장면일 뿐 어떤 의미도 느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은정의 죽음 후 세진은 집을 나오게 되는데 그럴 만큼 은정이 영화에서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광고의 한 장면 같은 보드를 타는 장면들은 그저 '요즘 아이들은 이런 힙한 느낌을 즐기는 거 어른들은 모르지요'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왜 자꾸 나오는지 영화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까지 해봤다. 자유롭게 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는 것처럼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인가 억지로 연결해 보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 등장인물들은 더 이상 자유로웠다가는 큰일 나는 인물들이다.
개인적으로 이유미라는 배우는 어느 배역을 맡아도 자신의 역할을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몰라요>에서도 제 역할을 다 해낸다. 하지만 캐릭터 설정이 약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설정되어 있는 것이 오히려 어른들이 뭘 모른다는 건지를 방해한다. 영화에서 표현된 정도면 또래가 봐도 잘 모를 것 같은 느낌인 것이다.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인 <더 글로리>를 떠올려 보자. '문동은' 캐릭터야말로 '어른들은 몰라요!'라고 외치고 싶은 캐릭터다. 우리가 문동은이란 인물에 빠져드는 건 그녀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와 어른들이 그녀를 잘못 대한다는 것이 명확하고 동은의 행동이 정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몰라요>에서는 일부 청소년들이 가출하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고생담을 나열해 주는 것뿐 그 과정에서 어른들이 무얼 잘못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른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이 나쁜 어른을 만날 곳만 찾아다니는 것이다.
가출한 청소년에게 선택사항이 별로 없어서 그들과 같은 생활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건 이미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각자에게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잘못된 개입과 방관이 있어서 정말 어른들이 잘 모르고 아이들을 해치는 과정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든 아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어른들에게는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딱히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상처를 주는 건 자기들끼리다. 영화 초반 세진에게 손찌검을 하는 것도 친구인 은정이고 임신한 세진을 죽도록 패는 건 세진을 좋아한다던 재필이고 세진을 벽돌로 내리찍거나 도둑질에 동참 시키는 건 주영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임신한 세진이 아이를 유산하기 위해서 이름도 모르는 약을 두 주먹 가득 먹는다거나 계단에서 자신을 밀어 달라고 하고 진짜로 굴러떨어진다거나 재필에게 죽도록 얻어 맞고 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밥 먹듯 먹어도 임신한 몸인 세진과 태아는 멀쩡하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과 여성의 임신을 무어라 생각하고 이런 장면들을 연출한 건지 단지 어떤 자극을 주기 위해서 그런 건지 의심스러웠다. 아이들이 약에 취하는 장면에서의 대사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고 자해 장면은 왜 세진이 자해를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 부족으로 그저 불쾌한 감정만 낳는다.
세진은 결국 출산을 조금 앞두고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그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이들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어쨌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은 어른에게 있는 것이니까. 책임은 있다고 쳐도 미안한데 진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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