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 남자가 턱받이를 한 채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의 표정은 텅 비어있다. 여자는 보드에 사진을 잔뜩 붙이고 메모를 써서 그의 앞에 가져다주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녀는 남자의 옆에서 조용히 차를 한 잔 마신다. 소중하게 들고 있는 찻잔에는 '에미코'라고 쓰여있다.
<내일의 기억> 기본정보
감독: 츠츠미 유키히코
출연: 와타나베 켄, 히구치 카나코
개봉: 2007. 5
러닝타임: 121분
OTT: 티빙 / 왓챠 / 웨이브 / 넷플릭스
<내일의 기억> 영화 줄거리, 결말, 후기
2004년, 사에키는 광고 회사의 부장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열정적으로 팀원을 이끈다. 그는 요즘 사람의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자동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곤 한다. 머리도 아프다. 그는 다 바빠서 그러겠거니 생각한다. 막 큰 광고 기획안을 따낸 참이다.
오늘은 딸과 결혼할 상대를 처음 만나는 자리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자꾸만 머리가 아프고 눈앞이 어지럽다. 가뜩이나 늦었는데 사에키는 출구마저 지나치고 만다.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을 정도로 도쿄의 도로라면 머릿속에 다 들어 있는데 그만 순간적으로 출구를 지나쳐 버린 것이다. 게다가 사위가 될 나오야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연거푸 술을 몇 잔 들이켜고는 그 자리에서 잠이 들고 만다.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중요한 거래처와의 미팅을 잊어버린 것이다. 차장의 사정으로 미팅 날짜가 하루 앞당겨져 있다. 전화로 상대방은 짜증을 내며 사에키 본인도 오케이 한 문제 아니냐고 따지지만 자신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말한 기억이 전혀 없다. 결국 헐레벌떡 거래처로 뛰어간 사에키는 몇 번이고 사죄를 하고 나이 탓이 아니냐는 핀잔까지 듣게 된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함께 간 뷔페에서 사에키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한참을 헤매던 사에키를 한 직원이 발견하고 부르지만 사에키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식사 중이던 직원들이 일어나 그를 부르지만 사에키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사에키는 책으로 자신의 증상을 찾아본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내가 들어와 무엇을 보고 있냐고 물어본다. 사에키는 일 때문에 하는 자료 조사라고 둘러대지만 아내는 믿지 않는다. 사에키가 방에서 나가고 아내가 책상 위에서 발견한 것은 봉투 안에 든 애프터 쉐이브 로션들이다.
아내인 에미코는 사에키를 화장실로 데려가 그동안 사에키가 반복해서 사 온 애프터 쉐이브 로션 통들을 보여준다. 화장실 선반에서 수두룩하게 나오는 쓰지도 않은 새 로션 통들을 보고 사에키는 놀란다. 에미코는 딸의 결혼식을 생각해서라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자고 설득한다. 함께 병원에 간 날, 사에키는 간단한 인지 기능 검사를 받게 된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오늘 날짜가 무엇인지 등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는 검사는 처음에는 순조로운 듯하다가 갈수록 대답하기가 힘들어진다. 사에키는 바보 취급 당한 기분이 들어 기분이 나빠진다.
병원에 가본 뒤 얼마 후 사에키는 직원들의 이름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그는 직원의 이름을 외우느라 회의에 집중할 수 없다. 게다가 늘 보던 직원의 얼굴이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의사의 권유대로 MRI 검사를 받게 된 사에키는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알츠하이머에 대한 책을 사 와서 보지만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 에이코에게는 리에에게는 말하지 말자고 부탁한다. 딸의 결혼식을 망칠 순 없다. 술도 운전도 할 수 없게 된 사에키지만 홧김에 편의점에서 술을 집어 든다. 하지만 방금 집어든 술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마저 잊어버린다. 얼마 후 사에키는 최종적으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된다.
아직 49살인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니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에키는 의사에게 행패를 부리고 방을 뛰쳐나가 옥상으로 향한다. 의사는 자신의 아버지도 같은 병을 앓고 있다며 죽으려는 사에키를 설득한다. 결국 옥상에서 내려온 사에키는 에미코에게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도 괜찮겠냐고 묻는다. 에이코는 두렵다. 괜찮을 리 없다. 하지만 사에키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이 곁에 있어 주겠다고 말한다.
사에키는 기억을 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손을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에 둘은 함께 오랜만에 도예 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둘이 처음 만난 곳도 산속에 있는 한 도예교실이었다. 에미코는 사에키를 여러모로 신경 써준다. 병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에키는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거래처로 향하던 사에키는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고 만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가까스로 도착했지만 왜 자꾸 늦느냐는 핀잔을 듣는다.
그런 와중에 에미코는 지인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남편은 언젠가 일을 못 하게 될 것이다. 에미코는 돈이 필요하다. 한편 사에키는 상사에게 불려간다. 어찌 된 일인지 국장은 그가 알츠하이머라는 걸 알고 있다. 희망퇴직을 권유 당하지만 사에키는 딸이 결혼할 때까지는 일하는 아빠로 있어주고 싶다. 결국 그는 영업부에서 자료 관리 과로 가게 된다. 직함도 부장에서 과장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 일도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다. 사직서를 내고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데 사에키 눈앞에 환영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에키는 혼란스러움에 호흡이 가빠진다.
리에의 결혼식 날, 사에키는 대표로 작은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사에키는 원고를 준비해서 보고 또 보지만 정작 할 때가 되자 원고를 잃어버린다. 원고가 없어도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사에키는 멋지게 연설을 마친다. 퇴직하는 날 사에키는 자신의 짐을 가지고 나오다 잠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리둥절 해진다. 주머니를 보니 '10/29 퇴직'이라고 쓰여있다. 영업부의 직원들이 나와 꽃을 건네주며 자신들을 잊지 말아달라며 사진을 건네준다.
2005년, 에미코는 사에키를 위해 집 안 곳곳에 메모를 적어둔다. 그는 점점 혼자 칫솔질하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2006년, 갑자기 사에키가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겠다며 나간다. 회의가 있다고 한다. 에미코가 자연스럽게 함께 간다.
2007년, 에미코가 일하는 도예 갤러리에서 2호점을 낼 계획이라며 에미코에게 점장을 해줄 것을 권유한다. 지인은 뿐만 아니라 요양 시설의 팸플릿도 함께 건넨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사에키는 반찬 먹는 걸 잊고 밥솥의 맨밥만 먹고 잠들어 있다. 하루는 사에키가 늦자 밖에서 다른 남자 만나는 거 아니냐며 화를 낸다. 그러더니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이혼해달라고 한다. 에이코는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서 운다. 사에키는 홀로 계속 도예 교실에 다닌다. 그곳에서 접시도 만들고 찻잔도 만든다. 가마에 굽고 나면 가마비를 낸다. 이번에 만든 찻잔의 가마비를 내려고 하는데 선생이 지난번 접시의 가마비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사에키는 사과하며 두 번 사용한 값을 한 번에 치른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노트를 펴는데 노트에는 분명 지난번 접시의 가마비를 내었다고 적혀 있다. 선생이 사에키의 기억력이 온전하지 않다는 걸 이용해 돈을 또 받으려 한 것이다.
그 일로 사에키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어두운 거실에 홀로 앉아 있는 사에키를 발견한 에미코가 분위기를 띄워 보려고 하지만 사에키는 이제 그만하자며 살아 있는게 짐이라며 운다. 에미코도 지칠 대로 지쳤다. 건강할 때는 자신과 리에에게는 관심 없던 사람 아니었던가. 화를 내는 에미코의 이마에서 갑자기 피가 흐른다. 사에키가 자신도 모르게 접시로 에미코의 머리를 때린 것이다. 괴로워하는 사에키를 에미코는 당신의 탓이 아니라 병의 탓이라며 달랜다.
어항을 들여다보다 에미코가 숨겨둔 요양 시설 팸플릿을 발견한 사에키는 홀로 길을 나선다. 전철을 타고 요양 시설에 가서 그곳을 둘러본다. 불안한 마음이 든 에미코가 전화를 거는데 전화기 너머 전철 소리가 들린다. 그때 전화는 끊어지고 사에키는 젊은 시절의 에미코의 환영을 본다. 사에키는 그녀를 따라 점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에키가 도착한 곳은 젊은 시절, 두 사람이 만났던 도예 교실이다. 폐허로 변해 있는 그곳에서 사에키는 에미코에게 줄 찻잔을 마저 완성한다. 그때 예전의 선생이 불쑥 나타나 사에키를 내쫓는다. 가만 보니 선생의 상태가 사에키보다 안 좋아 보인다. 요양 시설로는 안 갈 거라며 나뭇가지를 휘두르더니 사에키가 들고 있는 찻잔을 본다. 그걸 본 선생은 불을 지펴 찻잔을 굽는다. 두 알츠하이머 환자는 그렇게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선생은 온데간데없다. 그것 또한 사에키의 환영이었을까? 사에키는 꺼진 장작더미에서 찻잔을 꺼내 소중히 들고 산을 내려온다. 요양원에 가고 싶지 않은 사에키의 마음이 선생의 모습으로 나타난 건 아닐까.
사에키가 가지고 온 소지품은 다 내버리고 찻잔만 달랑 소중히 들고 내려오는데 저쪽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에미코가 그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에미코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다. 대신 자신을 바라보는 에미코에게 역까지 갈 건데 같이 가겠냐고 말한다. 에미코마저 기억에서 놓아버린 사에키는 찻잔을 손에 쥔 채 걸어가고 그 뒤를 에미코가 따른다.
<내일의 기억>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성이 병의 진행과정에서 겪는 상실감과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심리상태를 잘 그려낸 영화다. 같은 알츠하이머라고 해도 돌보기 힘든 경우도 있고 비교적 수월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잃어가는 일과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아끼는 사람이 더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어떤 방식이어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출처_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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